적정공사비 확보를 위한 발주기관의 노력도 감지되고 있다. 맹목적인 예산 절감이 아닌 공사품질을 높이기 위해 제값을 줘야한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전력과 한국동서발전의 설계조정률 폐지이다. 설계조정률은 1994년 정부 노임단가가 폐지되고 노무비 계산에 있어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하는 시중 노임단가가 적용되자, 당시 한전에서 품셈 과다로 인한 사업비 증가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했다. 일종의 노임단가를 낮추기 위한 보정계수로 시중 노임단가의 약 0.7728 수준이다. 설계조정률이 적용되면 노무비가 그만큼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특히 전기공사 부문에는 2006년 품셈 개정을 통해 폐지한 반면, 토목 분야에서는 그대로 유지해 업종 간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어 왔다. 설계조정률은 발전소 및 송전선로 건설뿐 아니라 소규모 전문업체가 수행하는 시설물 유지보수 공사에도 적용돼 종합ㆍ전문업체들의 민원이 상당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건설공사도 2007년부터 매년 표준품셈 실사를 통해 현실화하고 있다. 건설공사 표준품셈은 2006년 대비 약 85% 수준으로 하향 조정됐다. 이런 상황에서 설계조정률은 노무비를 이중으로 삭감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국전력이 지난해 7월1일부로 전격 폐지 결정을 내리고, 이어 동서발전까지 폐지에 동참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는 것이다.
실제 동서발전은 올초 입찰을 실시한 ‘동해화력 사택 및 체육관 신축공사(추정금액 118억원)’에 설계조정률이 반영된 품셈 대신 실적공사비로 발주하기도 했다. 동서발전 관계자는 “법적인 근거가 없는 설계조정률을 폐지하는 게 맞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폐지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다만 발전소 공사의 경우 실적공사비로 모두 커버할 수 없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적용 가능성을 연구 중에 있다. 연구 결과가 나오면 관련 규정을 바꿔 상반기 내에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한전 전력그룹사의 설계조정률은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서도 지적된 사항이다. 이에 따라 업계는 한국수력원자력 등 다른 한전 발전자회사들도 머지않아 폐지에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의 계약심사 원가 조정내역 공개도 변화된 발주기관의 사례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3월부터 정보소통광장(opengov.seoul.go.kr)을 통해 계약심사 때 조정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계약심사제는 입찰공고 전 공사발주 부서가 작성한 설계내역서상 원가의 적정성 여부를 별도의 계약심사팀이 검증하는 제도이다. 2003년 서울시가 발주기관 중 최초로 도입한 이후 성과를 인정받아 2009년부터는 지방계약법 개정으로 15개 광역시, 2010년에는 전국 지자체로 전파됐다. 원가 검토를 통해 과소 사정된 단가는 증액하는 경우도 있긴 하나, 업계 입장에서는 공사비 삭감의 도구로 운영되고 있다는 불만이 많은 게 사실이다.
지난해부터 조달청이 계약심사 요약본을 공개하고 있는 데에 반해 서울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내역서 전체를 공개하기로 했다. 다만 입찰 종료 전까지는 비공개 대상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건설업계의 공개 요구뿐 아니라 정보공개 대상이 강화됨에 따라 계약심사제 전 과정을 공개하기로 했다”면서, “업계는 공사비 삭감만을 주장하지만 서울시의 경우 계약심사제가 정착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심사조정률은 내려가고 있는 추세다. 이번 정보공개를 통해 계약심사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신뢰도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계약심사의 투명성이 강화됨에 따라 업계는 평균 10% 안팎으로 이뤄졌던 계약심사의 삭감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최초 도입 기관인 서울시가 공개하기로 방침을 정함에 따라 다른 지자체들도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 일부 시ㆍ도 교육청의 실적공사비 적용 대상 공사를 지자체 조례에 맞춰 100억원 이상으로 상향시킨 것도 발주기관의 변화 노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회훈기자 ho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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