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지자체 기부채납 요구…기준 만들어 예방

국토부, ‘적정 기부채납 가이드라인 마련’ 연구 착수

　# A사는 몇년 전 대구시내에 1800가구 규모의 아파트단지 분양사업을 추진하면서 해당구청 요구에 따라 학교용지와 사회복지센터를 기부채납하기로 약속했다. 당초 A사는 도시관리계획 변경 인허가를 얻기 위해 전체 사업부지의 22%를 공원과 도로로 기부채납하기로 했는데 구청측이 다시 분양승인을 전제로 추가 요구를 해오자 고민 끝에 요청에 응한 것이다. 사업이 지연될수록 이자 부담이 커지는데 분양일정이 불투명해질 것 같아서였다. 결과적으로 전체 사업부지의 38%를 기부채납하게 돼, 돈으로 치면 총 800억원이 인허가비용으로 소요된 셈이었다.

　시행착오 끝에 분양에 나선 이곳 아파트사업은 1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사업승인 지연으로 인한 이자손실, 주택경기 침체로 인한 분양가 인하 및 미분양 등에 따른 것이었다. A사는 인근 용지와의 형평성 및 적자 형편을 감안해 기부채납 의무를 일부 면제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지자체는 “약속 파기는 있을 수 없다”며 완강한 모습이다. 올 3월에는 감사원이 대구시와 해당구청에 대해 “기부채납이 부적정하다”는 주의조치를 내렸지만 아직 달라진 것은 없는 상황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무리한 기부채납 요구가 개발사업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적정 기부채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키로 해 주목된다.

　국토해양부는 최근 ‘적정한 기부채납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으며 앞으로 5달 동안 기반시설 기부채납제도의 운영실태와 문제점을 파악한 뒤 기부채납 적정규모와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기부채납’이란 국가나 지자체가 무상으로 재산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는데, 주로 개발사업 시행자들이 토지 용도변경이나 건폐율ㆍ용적률 인상 등을 전제로 도로나 공원, 기타 공익시설을 마련해 증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업 규모에 따른 기부채납 액수나 종류, 위치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없다 보니 현장에서 많은 갈등이 빚어지고 사업지연 및 개발사업 채산성 악화 등 악영향이 초래되고 있다는 게 국토부 판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행 국토의 계획ㆍ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는 지구단위계획 때 기부채납 정도에 따라 용적률ㆍ건폐율을 완화해준다는 규정이 있지만 사업별 명확한 사례와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실효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자체 입장에서도 용도지역을 변경하면서 주민 이익을 최대화하는 게 책임이 되겠지만, 과잉 요구로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도시관리 차원에서 기반시설 기부채납의 적정 규모를 서둘러 마련해 기업 투자애로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전문기관과 함께 기존에 완료된 개발사업을 살펴보고 기부채납 수준이 개발이익 대비 얼마나 되는지 해외 선진국은 어떻게 제도를 운영하는지 전반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 특히 수도권과 지방, 도시 규모와 인구, 개발 수요ㆍ필요성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 차등 지침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실태조사ㆍ연구용역 등을 마친 뒤 지자체 의견수렴과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확정할 예정”이라며 “아마도 내년 3~4월쯤, 늦어도 상반기 안에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지자체 등에 배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정운기자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