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지급확인시스템 논란은 건설산업 전반에 만연한 비정상적 관행들과 비교하면 ‘빙산의 일각’이다.

　국가·지방계약법령상 명시된 발주기관의 귀책 사유로 인한 공기연장 실비반영이 예산부족을 이유로 거부되고 발주기관들마다 공사비 후려치기에 나선다. 지방자치단체와 산하 지방공기업들도 예산삭감에 급급한 계약심사제 운영으로 건설기업의 상생과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긴 마찬가지다.

　공기연장 추가비 지급 문제는 박기풍 국토교통부 1차관이 작년 건설동향점검회의 때 업계 건의를 받아들여 산하 지방국토청과 4대 건설공기업에 선제적으로 보상할 것을 주문했지만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원도급사, 하도급사, 2차 협력사, 건설근로자들이 연쇄적 피해를 입고 있다. 최상단에 위치한 발주기관의 대가지급이 부적정하면 그 피해는 결국 건설산업 내 모든 주체, 나아가 공공시설물 품질저하로 인한 국민으로 파급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건설업계는 이런 폐해를 저감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의 총사업비 관리지침상 발주기관의 자율조정 항목에 ‘공기연장 등 기타 계약내용 변경’을 명시할 것을 건의했다.

　지자체가 일정금액 이상 공사(광역시도 추정금액 5억원 이상, 기초지자체 3억원 이상)에 적용하는 계약심사제는 예산절감 수단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설계내역서상 단가, 노무비 수량, 품셈기준 대비 직접공사비, 물량내역서상 신기술 사용료, 주요 자재단가, 간접노무비·일반관리비·기타 경비 등을 삭감해 예산을 줄이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계약심사제는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는 탓에 업계가 항변할 길도 막막하다. 건설업계는 조달청이 업계 요구를 반영해 도입한 조사금액 조정내역 공개제도를 지자체들이 벤치마킹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지자체 및 산하 기관의 공사비 일률삭감 등 부당행위에 대항해 건설사가 부정당업자 제재 우려없이 공사를 포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이의신청제도 도입해야 ‘슈퍼 갑’의 일방적 횡포를 막을 수 있다고 업계는 지적한다.

　복수예비가격 산정기준도 불합리하다. 조달청, 안행부, 수공 등이 복수예비가격 범위를 기준금액의 플러스·마이너스 2~3% 범위에서 정한 것과 달리 한국토지주택공사, 철도시설공단, 한국도로공사, 한국가스공사 등은 기준금액의 0%~-6%로 정한다. 이런 구조 아래 예정가격은 기준가격을 하회하고 그 손실은 업계 몫이다. 건설업계는 복수예가 작성 때 기준금액의 상·하위 범위에서 추출하는 방향으로 정부 차원에서 회계통첩을 발령할 것을 주문한다.

　한국전력과 산하 발전자회사들의 설계조정률제도 불합리하다. 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한전과 동서발전은 작년 7월과 11월에 이를 폐지했지만 나머지 발전자회사들은 이를 고수하고 있다. 1994년 정부 노임 폐지 후 시중노임이 도입됐음에도 불구하고 표준품셈 과다로 인한 공사비 증가를 빌미로 노무비를 삭감하겠다는 설계조정률제도 아래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역점과제인 ‘일자리 창출 및 경제민주화’도 어렵다는 게 업계 반박이다.

　저가낙찰된 공사비를 무분별하게 활용하는 실적공사비 문제는 가장 큰 애로점이다. 덤핑가격이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건설산업의 근간을 위협한다는 업계 하소연을 감안해 종합·전문·설비건설단체들이 자체 조사를 통해 실제 투입되는 가격과 괴리를 보이는 실적공사비 항목들을 실적공사비 산정을 맡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제출했지만 건기연은 키스콘에 기입된 원가 대비 64% 이하의 하도급 계약단가만을 인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실적공사비제도에 대한 종합적 공과분석을 거쳐 그 폐해를 최소화할 대안을 서둘러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 밖에 낙찰을 빌미로 특정하도급자 선정을 강제하는 일부 발주기관들의 부당한 권리남용과 발주기관을 능가하는 민간발주자의 횡포를 근절할 정부 차원의 대안까지 마련해야 건설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한목소리다.

김국진기자 jin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