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재(국회의원, 새누리당)

　우리 사회의 화두는 불공정한 ‘갑을관계’의 개선이다. 불공정 ‘갑을관계’의 타파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경제영역 전반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특히 건설업계는 건설경기 불황과 맞물려 갑(甲)인 공공공사 발주자의 횡포에 맞서 불공정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등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8월 발주처 책임으로 인한 공사기간 연장과 관련한 의미 있는 판결이 있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하철 7호선 연장선 서울구간 공사를 맡은 시공사들이 제기한 ‘공기연장에 따른 간접비 청구소송’의 1심 판결에서 “서울시는 건설사가 청구한 공기연장에 따른 간접비 전액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발주처가 아닌 건설업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국가계약법에 따르면 시행사의 귀책사유가 아닌 공기연장으로 인하여 계약내용이 변경되면 계약금을 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발주기관은 예산 부족 등의 이유를 들어 이를 잘 지키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한 문제는 건설사들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소송으로까지 이어져 많은 사회적 비용과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발주기관의 대금지급이 부적정하거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그 피해는 원도급자를 넘어 실질적 취약계층인 하도급자에 미치게 된다. 특히 제2협력사를 비롯하여 장비 업체와 현장 근로자까지 연쇄적으로 피해를 주게 되어 건설업계에 미치는 파장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공공 시설물의 부실공사를 초래하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이를 이용하는 국민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이 된다.

　그런데 이번 판결로 공기연장에 대한 간접비를 보상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반면에 공기연장에 따른 간접비 지급을 피하기 위해 신종 불공정 관행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따라 관련부처의 철저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건설업계는 요구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러한 내용들을 유형별로 지적한 적이 있다.

　첫째, 공사 휴지기를 편법 운영한 사례다. 휴지기간이란 공사 여건상 도저히 공사를 진행할 수 없는 날을 휴지기로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일부 기관에서는 시공사와 제1차 계약을 체결한 이후, 제2차 공사도급부터는 휴지기간을 조정한 후속 공사도급 계약 및 계약변경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휴지기간은 계약기간에서 제외하고, 휴지기간 중 계약 상대자는 추가비용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포함 시킨다. 이를 통해 휴지기간 규정에도 불구하고 공사 강행을 지시하는 사례가 많다. 이러한 계약변경을 통해 휴지기간 중에 공사가 진행되어도 공사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어, 휴지기간 중 발생하는 간접비 등은 전적으로 시공사에서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차수별 계약기간 조정을 통해 간접비 지급을 회피하는 사례다. 이는 장기 계속비 공사의 경우, 공사계약 차수 변경을 할 때에 이전 계약 종료일과 다음 차수 공사시작 기간을 길게는 6개월 이상 까지 간격을 두어 부족한 공기를 보충하고 있는 것이다. 즉, 공사기간이 부족할 경우 다음 차수 계약일정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공기를 맞추는 것이다. 전(前) 차수계약 종료시점부터 다음 차수계약 시작 전까지 기간은 공사 계약기간이 아니므로 시공업체는 간접비 청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공사는 공사 중간에 다음차수 계약까지 공사 현장을 철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발주자인 기관의 눈치도 봐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계약기간이 아닌 기간에도 시공사 부담으로 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시공사는 공사가 중단되면 간접비 등 추가비용이 발생하므로 어쩔 수 없이 사전공사 시행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이때 이미 선투자한 금액은 정식적인 계약기간이 아니어서 금융이자를 받지 못하는 등 온전한 보전이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현재 정부는 의지를 갖고 공기연장 간접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산하기관들은 이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보다 철저한 산하기관 관리감독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서울시 지하철 7호선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 이와 유사한 소송이 봇물처럼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바, 이와 관련한 준비를 선제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건설업계는 발주기관 귀책사유에 따른 공기연장 간접비 미지급분이 무려 1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는 도로 부분에서만 예산부족으로 2000억 원 가까운 공기연장 간접비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큰 혼란을 겪지 않고 재정의 안정을 위해서 하루빨리 불공정한 관행을 바로 잡고 이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 사회 각 분야에서는 불공정한 ‘갑을 관계’ 개선을 위해 다양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더 이상 발주기관의 꼼수로 인해 건설업계를 옥죄는 일은 근절되어야 한다. 정부는 비정상적 관행으로 건설사들이 떠안은 간접비 자율조정 항목을 시급히 정상화해야 한다.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관행이 사라지면 얼어붙은 건설시장은 다시 활력을 되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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