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조합설립 이전에 중단된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추진위원회 사용비용을 70% 이내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추진위의 채무부담이 크게 줄었지만 남은 비용을 누가 갚아야 할지 불투명하고, 조합에 대한 지원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주민과 시공사, 정부의 다툼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서울시는 17일 정비사업 추진위원회 사용비용 보조기준을 담은 ‘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번 조례안은 지난달 국토해양부가 개정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의 후속 조치다. 국토부는 추진위 승인을 취소하면 지자체가 추진위가 이미 사용한 비용을 보조할 수 있도록 했다.

　시 조례안의 핵심은 해당 자치구의 검증위원회 검증을 통해 결정한 사용비용의 70% 이내에서 시나 구가 보조하는 것이다.

　시의 이번 결정으로 추진위 부담이 크게 줄게 됐다. 그러나 이는 주민과 시공사, 정부가 얽힌 채권·채무 다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그동안 정비사업을 접으면 남은 빚은 누가 갚을지 논의가 이어졌지만, 얼마나 갚아야 할지는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규모가 줄어든 것이지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채무주체가 불투명하고 조합에 대해서는 보조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용비용은 대부분 추진위나 조합이 인건비나 용역비 등 정비사업 추진비용을 건설사에서 빌려 사용한 돈이다. 이 돈을 추진위 동의자나 조합원들이 나눠 갚으려면 총회 등에서 의결을 거쳐야 한다.

　빚을 나눠 갚자는 의결이 이뤄지기 어려울뿐더러 사업을 접은 마당에 이런 안건의 총회 자체가 열리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업 추진과 반대 세력 간 갈등은 물론 찬성했던 주민 간 갈등까지 불거질 수 있다.

　건설사 관계자는 “결국 추진위원장이나 임원들한테 돈을 받아야 할 텐데 사업에 앞장섰던 사람들만 빚더미에 앉게 되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건설사가 나머지 30%를 포기할 수도 없다”며 “이는 업무상 배임”이라고 말했다.

　추진위 다음 단계인 조합은 사용비용이 훨씬 많아서 다툼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지원 재원에 대해서는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추진위 지원은 서울시와 구청이 지원하기로 했지만, 구는 지원 여력이 없어서 대부분 서울시가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시 관계자는 밝혔다.

　조합에 대한 보조는 중앙정부가 지자체 지원 비용의 60% 이상을 부담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건기 시 주택정책실장은 “사용비용 보조는 100% 지자체 부담이 아니라 정부의 지원도 함께 병행돼야 한다”며 “최근 지자체 지원 비용 중 60% 이상을 정부가 지원토록 하는 내용을 담아 발의된 도정법 개정안이 활발한 논의를 거쳐 실현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김정석기자 jskim@